제가 어릴 때 한화이글스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우승은 없었지만 매번 가을야구에 참여할 정도로 강팀이었고, 해태(현 KIA)에게 발목을 잡혔지만 언제든 한국시리즈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여겨졌습니다.
1992년 롯데와 한국시리즈 패배가 두고두고 아쉬울 뿐입니다.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한화는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고 보면 됩니다.
김인식 감독이 오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긴 했지만 ‘재활공장장’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은퇴를 앞둔 고령의 노장들의 활약이 컸습니다.
특히 은퇴 후 고등학교 코치를 하다 다시 복귀한 지연규의 스토리는 유명했습니다.
이후 세대 교체를 놓친 한화이글스는 류현진마저 메이저리그로 떠나면서 전형적인 약팀이 됐습니다.
김응용, 김성근 이란 명장을 모셔 팀을 수습하려 했지만 세대교체와 성적 두 마리 토끼를 쫒다 실패했습니다.
정민철 단장이 오면서 ‘3년 리빌딩’을 선언, 베테랑 주축 선수들과 헤어지는 선택을 하면서 맨땅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수베로 감독 시절 ‘승점 자판기’, ‘보약’ 등의 비아냥 거리는 소리도 들었지만, 결국 우리는 웃었습니다.
‘실패한 자유’를 내세웠던 수베로 감독. 그가 떠나면서 했던 “한화팬들이 웃는 날이 올 것”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오랫동안 웃을 것”이라고 했던 그의 말도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정은원과 노시환, 김인환, 김태연 등 내야수와 불펜 강재민, 윤대경, 김범수 등은 수베로 감독 시절 꾸준한 기회를 얻으며 성정한 선수들입니다.
여기에 현 프런트가 채은성과, 이진영, 이태양 등 국내선수와 재계약한 페냐, 그리고 빠르게 산체스를 대체선수로 데려오면서 부족한 퍼즐을 맞췄습니다.
지금의 성적은 최원호 감독과 현 프런트의 공도 있지만 리빌딩을 위해 과감한 선택을 했던 우리에 레전드 정민철 단장, 그리고 끝까지 신념을 지켰던 수베로 감독의 공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